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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0 소위 정체성 (2) - 서진휘

소위 정체성

  사치코 님이 뻥 뚫린 어묵이나 불어터진 파스타로 변해버린건 토요일에 카시와기 씨를 만난 다음부터였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1권 중에서

  스스로 심이 있는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이 블로그가 적당히 먹기 좋은 내용물이 없었던 건 분명하다. 정체성씩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다.
 
  문득 '이 블로그는 뭐하는 블로그일까'라고 생각했다. 포스팅하기는 까마귀가 까치 대신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다가 다리 밑에 가서 아이를 물어다 주기보다 드물 정도면서, 그래도 주인장이라는거겠지.
  비용 쪽의 문제도 있긴 하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은 물론이고 티스토리나 이글루스 같은 비교적 훌륭한 블로그 서비스가 존재하는 마당에(이 두개는 분점이 있지만) 나는 호스팅이 필요한 설치형 블로그에 유료 호스팅까지 해가면서 거기다 도메인까지 덧붙여 '돈 들여 가며' 블로그를 '냅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뭘 어쩌려는 걸까.
 
  한때 아주 잠깐 야구 블로그가 될까 했었다. 하지만 스포츠 얘기는 나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고 경기를 하거나 본 경험이 풍부하며 사실적으로/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블로그가 많다. 거기에 꼭 하나를 굳이 보태겠다면 그러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저 나도 야구가 생활에 적당히 스며들어간 팬이라고 할까. 응원하는 팀이 지면 섭섭한 것들도 많고, 한 시즌 126경기를 꼼꼼히 분석해가며 쓰고야 말 기자 타입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팬심과는 별개로 관심 있는 것은 야구 리그 운영이나 행정 전반에 관한 일.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와 금액, 상황을 정리해보고 나서 기운이 꺾여버렸다. 워낙 엉망인 탓에 '운동'을 벌일게 아니라면 이 영역에 대해 얘기하는건 바위에다 계란을 던져대는 글쓰기가 될 터였다. 이 핑계는 블로깅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도 과소평가하는 일도 될 수 있겠지만, 그쪽으로 힘을 기울이느니 지금부터 진로를 바꿔 야구행정가가 되는 쪽을 택하는게 나을게다. 나는 그런 계획을 잡고 있진 않았다.

  양으로 볼 때 고정적인 포스팅거리가 생길 수 있는 주제라면 애니메이션 쪽이 있겠다. 이건 마음속으로 뭉텅 떼어다가 이글루 쪽으로 옮겼다. 이글루스가 덕글루스니 그쪽에 사람이 많아서? 조금은 그렇기도 하겠지. 그래도 이글루에 쓰는 글을 밸리까지 보내는 일도 드문데.
  그보다는 취향이 한 쪽으로 치우친 얘기를 반복적으로 보임으로서 '나'가 휩쓸리는 경향을 막고 싶었다. 노파심이지만 이건 부끄러운 얘기를 숨긴다는 식의 걱정과 다르다. 남이 뭐라고 하건 당당하고, 애초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포스팅하진 않는다. 아마 이쪽 계열로 도배가 되는걸 피하고 싶었던게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리저리 떼어내고 나니 '나'가 남았다. 솔직히 '나'의 '글'이라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고상한 썰들을 풀어놓을 이유도 없고 개그를 해도 헛소리를 해도 상관없다. 전문적인 블로그가 될 생각은 없다. 블로그 저널리즘이라니 이건 저널리스트다운 생각이다. 기사에 준하는 내용이 담겨져 나오는 매체로 파악할 뿐 블로그가 좀 자유롭게 유치하게 지지고 볶아도 되는 개인의 공간이라는 점에는 좀처럼 주목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만 전문적인 블로그가 되라는데 별로 관심은 없다.
  '일단 포스팅이나 좀 하면서 얘기해'라는건 알고 있으니까 됐고, 언제나 꿈꾸지만 자기 생각을 만족할만큼 풀어놓을 수 있는 곳을 만들길 바라고 있다. 아, 타인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블로거라면 좀 되어보고 싶다. 이쪽에서는 그동안 다른 이의 포스트들을 읽는걸 등한시했다는건 인정. 하지만 이건 벗어나는 얘기고.
 
  그래서 이 블로그는 어떻다는 얘기?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 주절거려본 것들을 짊어지고 변변한 정체성은 없이, 앞으로는 주제 불명이라도 포스팅을 자주 해보겠다는 얘기.
2008/07/10 03:16 2008/07/10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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