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연금 상태가 안 좋다든가 고갈되어 간다는 얘기가 나오면 누구든 '어떻게 운영을 했길래 그 지경'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언론에서 이를 효과적인 대정부 공세의 빌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정권이 어느쪽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공무원 연금이 최근에 개혁되었다고 하는데 보험료는 인상되고 지급액은 줄어든다고 한다. 이는 시간문제일 뿐 에상되던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러나 사실, 모든 연금은 고갈을 향해 달려가게 되어있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딜레마라고 할까. 연금 제도를 수십년 전부터 운영해봤던 선진국들도 차례차례 연금이 고갈되어갔고 옆나라 일본도 착실히 연금이 고갈되어가고 있다.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나라도 물론 하나하나 연금이 고갈되어 갈 예정이다. 그냥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뭐 연금 고갈에 대한 설명 방식이라고 보면 되겠다.

  1. 우선 연금은 공적 부조의 한 형태이다. 다시 말해, 연금 가입자가 은퇴 이후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을 목표로 한다.
  때문에 연금지급액은 가입자의 납입액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있어서 (여기서 말하는 인플레이션은 연금을 생각하고 있는만큼 수십년 단위로 보도록 하자.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매우 작거나 마이너스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장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상승한다고 할 수 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주1) 바꾸어 말하면, 연금 가입자가 납부한 연금액은 물가가 상승함에 따라 계속 가치 절하된다.
  인플레이션에 관한 고전적인 유머가 있다. 1억이면 집을 사던 시대에, 평생 죽어라 일만 열심히 하며 돈이 모이는대로 기쁨에 부들부들 떨면서 금고에 돈을 넣던 사람이 있었다. 대충 50년 뒤 드디어 원하던 1억원이 다 모였고 이제는 다시 기쁨에 눈물콧물 흘리면서 새 집에 들어갈 새 TV를 마련하자고 결심한다. 기분 좋게 구매하려는 순간 점원이 말한다. "5천만원입니다, 손님" ( - 극단적인 에라는건 눈감아주자...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0.001%만 발생했다 치더라도 국가 전체적으론 손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자)
  국가는 연금 지급 대상자가 이 불쌍한 사람과 같은 처지에 빠지지 않도록, 최소한 연금지급액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손실 보전을 할 필요가 있다. 연금은 기본적으로 들어온 것에 비해 많이 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2. 그리고 연금 가입자의 인구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적 부조를 제도적으로 정착화시키는 (연금 강제 가입을 실현할 정도의) 단게의 국가라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산업화가 완전히 완료되고, 소산소사의 도시형 인구 구조로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피라미드가 역전되는 지점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태어나기는 조금 태어나고 평균 수명은 연장돼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연금은 한 세대만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문제가 있다. 간단히 생각해 25~65세 사이의 가입자가 65세 이후의 연금지급대상자들을 떠받치는 구조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행하는 동안 출산률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으며, 평균 수명은 연장되고,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늘어난다. 인구 피라미드의 아랫 부분은 점점 줄어들고, 윗부분은 점점 팽창한다. 젊은 세대의 인구는 줄어드는데 떠받쳐야 할 인구는 점점 늘어나므로, 그에 따른 압력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은 압축근대를 자랑하는만큼 저출산률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이며 노령화 속도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이다. 가입자가 받게 되는 압력은 엄청나게 클 수 밖에 없다.
  연금은 지급대상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계속 지급하는 것이 국가의 약속이다. 굳이 언급하는게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만큼 사셨으니 어서 빨리 돌아가시라고 할게 아닌 다음에야, 납입료가 점점 인상되고 지급액이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의 수순이다.

  3. '그렇다고 해도 좀 더 잘 운영하면' 모든 것을 보전하고 수익을 낼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금에는 한게가 있다. 사적 보험이 아니라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부조의 형태이기 때문에, 연금의 운용에는 전통적으로 (미국에서도) 신중한 운용이 강조되어 왔다. 다시 말해 연금의 운용은 상당히 안정지향적이며, 무리하게 수익성을 추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연금 운용에서 일정 정도의 수익성을 추구하는 방향이 집행되었던건 케네디 정부에 이르러서야 시도되었던 일이다.

  19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출은 끊임없이 증가해왔다. 최소한의 작은 정부에서 점차 개인의 영역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고갈되어버릴 연금 따위 싹 없애버리면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젠 그럴 수도 없다. 국가의 공적 부조를 통해, 개인의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붏확실성(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있지만 가지고 가야만 하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연금 개혁이라는 것은 그래도 망하지는 않도록 연금을 조정해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금 고갈에 대한 간단한 아이디어이기 떄문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가뿐하게 쓰지 않기로 하겠다. : >

주1 )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 지칭하므로 어폐는 있는 문장이다.

판치라 : 남성적 욕망에 올라타기

2008/09/11 12:16
  일상적 판치라
  새삼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라거나 (에전에도 안 그랬던 것 같지도 않다) '어머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어조라기보다는, 담담히 일상적 판치라라는 현상을 기술해보고 싶다. 그렇다, 요즘이야말로 일상적 판치라의 시대가 아닐까? 요즘은 도처에서 판치라를 볼 수 있다. 표지에 낚여 펼쳐 든 만화책에서도, 정체불명의 스토리를 확인하려 보기 시작한 애니에서도, 개발 중이라고 프로모션을 뿌리는 온라인 게임 스크린샷에서도, 어디에든 판치라가 자연스럽다는 듯이 존재할 것이다. 특정한 미디어 한정이긴 하지만. (설마 하여 덧붙이건대 캐릭터가 아닌 '현실'의 인물이 속옷을 드러낸다고 해서 판치라라고 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인터넷 공간으로 확장하면 미디어 한정이라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본 일러스트에 판치라 소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다든지. 그러고보면 이건 예전에는 흔하게 보기는 힘들었던 당황스러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남성적 욕망
  어떤 면이 당황스러운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보자. 판치라의 대상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다. 코스프레라도 했거나 어지간히 하드코어한 장르가 아닌 다음에야 남성의 판치라는 생각하기 힘들다. (혹시라도 '남성의 판치라'를 다룬 작품이 있다면 부디 소개해주길 바란다. 레어하니까 꼭 봐야한다. [..] )
  다시 말해 판치라를 욕망하는 대상은 남성이다. 여기서 남성은 생물학적 남성이라기보다는 특정한 남성적 시선을 의미한다. '보일듯 말듯'의 한계점애 가까운 지점 정도가 판치라라고 생각한다.
 
  판치라는 '나쁜가'? 잘 모르겠다. 다만 판치라가 남성적 욕망의 현상이라는게 주지의 사실이고,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두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품'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도덕률을 강제할 권리는 없다. 다만 여성 캐릭터 대상의 이 장르를 불편해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동승하기
  판치라가 페티시즘의 하위 개념이든 아니든 어떻든간에,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은밀한 '엿보기' 심리를 전제로 깔고 있다. 판치라는 우연히 그려진 일러스트 하나, 우연히 만들어진 캐릭터 하나가 아니다. 남성적 욕망의 시선이 겹쳐지고 겹쳐져서 특정한 상품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진 하나의 '장르'다. 막말로 하면 일단 주목받고 웬만큼 나가니까 일단 벗겨본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즉슨 판치라가 결합된 어떤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러한 욕망의 시선에 나 자신 하나를 던져 욕망의 일부로 만든다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같은 배에 올라 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판치라가 나오는 순간에 이 시선에 자신을 포함시켜도 되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원작과는 아무 관계 없이, 어떤 캐릭터가 다른 이들에 의해 어딘가의 공간에서 판치라화 되는 것은 삽시간의 일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요즘은 이런 단계에서 모든 부산물들을 함께 즐길 것인가/말 것인가에 대해 조금은 곤혹스러워지는 것 같다. '남자니까 어쩔 수 없어'라는 논리를 자꾸 보게 되면 더욱 그렇다.

(여전히 결론은 없는 글)

알라딘 TTB2 추천도서에 짧은 코멘트

2008/09/04 11:17
  별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거나 아니면 멋있게 보이려고[??] ... 같은 이유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알라딘 TTB2를 신청하고 배너를 달아보았습니다. 그렇잖아요, 누가 굳이 마이너인 이 곳까지 와서 굳이 책 광고 배너를 클릭하겠어요. 전에 구글 애드센스를 달았을 때야 상품 종류가 다양하니까 클릭해본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어떤 책들이 올라오는가가 궁금했기 때문에, 랜덤으로 설정하고 한달 반 정도 두어보았습니다.
  약간 패턴이 있더군요.
  일단 유아용 도서와 고전문학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나올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인문사회과학 도서가 나오는 일은 제가 관찰한 때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책 제목으론 OOO선생님이 들려주는 OOO이야기 같은 시리즈나 제목에 똥이 들어가는 책이나 (기타 등등)
  이제 대충 뭐가 나온다는 파악은 됐으니 슬슬 카테고리를 지정하든지 책을 지정하든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래도 돈은 안 벌릴 것 같지만 상관 없으니까요 [...생각해보니 알라딘엔 상관있으려나]

축구, 2002년으로 되돌아간다면 (망상)

2008/08/10 23:59
  굉장히 뒤늦은 감상인데, 올림픽 축구를 시청하면서 새삼 떠오른건 이 나라의 축구 열기는 아직은 뜨끈하다는 거다. 절대적으로 대표팀 경기에 한해서지만. 뜨겁다고 하지 않고 뜨끈하다고 한 건 아무래도 2002년 이후에 반짝했던 그떄의 열기와는 비교할 수 없어서인데, 최근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대한 성원과 관심이 줄어드는 일은 매우 힘들어보인다.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독이 든 성배’가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질타가 쏟아지긴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얘기다.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반면, 이 전력을 뒷받침해줄 기반인 프로 스포츠로서의 축구리그는 어중간한 상태로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국가대표팀에 관심을 갖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프로 리그인 K리그에 관심이 없다. 이것은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을 표방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기는 하다. 다만 축구의 경우는 다른 종목에 비해 좋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프로 리그의 역사도 길며 야구에 이어 두번째로 괜찮은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002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전국을 휩쓸었던 거리 응원 문화에 소위 ‘보수’라고도 불리고 ‘우파’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은 발전한 조국에 대한 끝없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감격해마지 않았으며, 소위 ‘진보’라고도 불리고 ‘좌파’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은 87년 이후 다시 한번 폭발한 광장의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꼈고 붉은색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사회에 대해 새삼스러운 민주화의 감격을 토로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이러한 열기는 축구, 그리고 K리그에 대한 관심으로 일정 부분 이어질 것이라고 축구계는 기대했던 것이지만 이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2002년은 하나의 축제이자 이벤트였다. 사람들이 축구 자체에 대해 보인 관심은 4년마다 한번씩 (언론이 띄우는) 국민적 스포츠 영웅이 손쉽게 금메달을 따내는 과정 그 이상이 되지 않았다. 오프사이드, 포메이션, 페널티킥과 승부차기 같은 용어는 평영 자유영 배영이나 50m 100m 등의 전문적인 용어에 불과했다. 스포츠를 즐기는 데에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당시의 축구는 이벤트의 소재로서 다뤄졌을 뿐이며 사람들은 스포츠가 아닌 축제 자체를 즐겼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을 외치고 정해진 박자로 박수를 치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게 그 시절이었고, 사람들이 한국 스포츠를 응원해 온 연장선상의 방식이었다.
  스포츠가 아닌 축제를 즐겼던 그들에게 K리그는 단순하고 평범한, ‘재미없는’ 무엇이었다. 때문에 K리그의 흥행 실패를 국민들의 '배신'이나 무관심 탓으로 돌리는 것은 대표적인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가 끝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축제가 끝나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것뿐이다. 같은 '대학민국' 선수인 김남일과 이을용이 각기 다른 소속ㅌ임에서 서로를 향해 싸우는 풍경도 일부 팬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뚜렷한 지역 연고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같은 나라라는 개념으로는 묶여도 낯선 연고지와 프로 클럽을 향한 충성도는 자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당시로 날아가서 정말로 K리그를 흥행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했을까?

  이후부터는 완전한 망상이니 읽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내공 여부에 따라서 얼마든지 마음껏 비웃어도 좋다.

  다만 한일 공동개최였던 2002 월드컵을 계기로 동북아시아 통합 리그를 구성해봤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을 토대로 착실히 풀뿌리 클럽팀을 정착시킨, 리그 운영면에서는 성숙한 J리그와는 달리 K리그는 저변이 매우 좁다. 중국의 경우 가능성은 크지만 역사나 선수들의 실력 면에서 두 리그에 뒤처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클럽팀을 경영할 때 지향해야 할 점은 연고지역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립 가능한 재정도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팀의 평균관중수가 현저히 적고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다른 부문을 잠식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국내 스포츠 단체 중 가장 풍부한 자금과 매출을 내고 있는 법인 중 하나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 클럽팀으로 충성도가 옮겨가지 않느냐고 화내기보다, 갑자기 클럽에 대한 애정을 생겨나게 하려 애쓰기보다는 국가대항의 개념을 조금 더 이용해서 리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방향 설정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일본의 선진적인 리그 운영 기법을 배우고 중국의 공한증 심리를 이용하면 괜찮은 대결 구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으로서도 - 비록 꾸준한 투자가 차근차근 진행되어왔지만 - 선수들의 수준 자체는 크게 높은 편이 아니기에 - 중국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면 - 손해되는 장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리그 운영이 너무나 과감하다고 생각하면 동북아시아 한정 컵대회도 괜찮다. 동아시아축구연맹이라 해서 베트남, 몽골 등의 10개국 축구협회의 연맹이 있긴 한데, 여기가 개최하는 대회는 클럽끼리 펼치는게 아니라 국가대항전인 동아시아 축구대회. 공식A매치로 보기도 어려워서 우리는 보통 1.5군이 출전하는 별 실효성 없는 대회다. [...] 그것보단 국내 컵대회를 하나 양보하더라도 3국이 같이 참여하는 컵대회가 있으면 잘 팔리지 않을까.
  이미 아시아가 너무 지역이 넓은데다 중동이 차지하는 입김이 너무 커서 많은 견제를 받는게 사실인데, 이렇게 리그를 지역 단위로 묶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동북아시아가 따로 독립해나가는 경우를 생각해 봄 직도 하다.

괴쪽지라고 생각했더니 반전

2008/07/23 15:15

  실제로 쓰기도 하고 서비스 시험용이기도 하고 어쨌든 전 몇개의 오픈아이디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안철수연구소에서 서비스하는 아이디테일도 물론 사용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디테일 쪽에서 제 계정으로 메일을 보내서 한번 열어봤습니다. '회원님께서 일주일 동안 읽지 않으신 쪽지가-'
  그렇습니다. 아이디테일에선 오픈아이디 유저간의 친구 등록과 쪽지 시스템을 지원하던 것이었죠. 그래서 무슨 쪽지가 왔던가 보러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이름은 지웠습니다)
  엑! 이게 뭐야! 돈이 필요하다니... 보통의 스팸성 광고! 드디어 오픈아이디 서비스까지 진출인가!!
  '돈이 필요해요ㅠㅠ'라는 내용으로 또 하나의 쪽지가 동일인에게 와 있었습니다. 그렇군... 광고 하나 하려고 이제 오픈ID까지 만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는요.

  이쯤에서 다양한 가설을 세웠지요. 안철수연구소를 궁지에 몰리게 하기 위한 경쟁업체[?]의 고도의 안티라든가...

  그래도 어떤 사람일까? 싶어서 이름을 눌러봤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오픈ID 정보가 있는 페이지로 연결이 되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 멀쩡한 사람이잖아?!?! ]
  .......
  예, 멀쩡한 사람이었죠. 갑자기 급전이 필요해져서 저에게만 돈이 필요해요ㅠㅠ 라는 슬픈 쪽지를 두번이나 '이 방법뿐이 없는 건가요?' 라는 하소연과 함께 올리셨을리도 없고... 전 혼란에 빠졌습니다. 좀 더 검색을 해보기로 했죠.
 
  아이디테일을 좀 더 살피던 중 다음과 같은 로그를 발견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
  ........ [ OOO님이 XXX님을 $4,610에 구매하였습니다. ]
  이게 뭐지?!
  아이디테일이 언제 인신매매 사업에 손을 댔지?!?!

  사회와 인류와 우주를 위해 공헌하기로 마음속으로 혼자 굳게 다짐했던 저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방문을 소홀히 했던 아이디테일 사이트를 좀 더 뒤져보았습니다.
  안철수연구소 고슴도치 플러스 블로그를 방문했더니 다음과 같은 사이트 안내가 있었습니다.
 '너는 펫' 이란 ?
 : 친구들을 나의 펫으로 사고 팔 수 있고 별명을 지어주거나 선물도 주면서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아이디테일의 재미있는 장난감이에요. ㅋㅋ ^-^ !
  아하? 친구들을 [나의 펫]으로 [사고][팔] 수 있군요!!! 그래 나도 친구들을 팔아서 엑박도 사고 아이마스도 사고... 아니 이게 아니지.
  ... 친구들을 왜 사고 파는거죠? [...] 아무튼 아이디테일에선 오픈ID를 매개로 해서 이런 SNS를 서비스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으로]이라는 페이지에서는 나의 주인님을 확인하는 코너 그리고 나의 가치를 확인해 주는 'OOO님의 현황' 그리고 '나의 소중한 펫들'과 친구가 선물해 준 '내가 받은 선물'이 있습니다.
(중략)
 내 펫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내 친구가 누구의 펫인지 실시간 감시(?)할 수 있다는 점이죠! ^^
  그렇군요... 주인님을 확인... 그리고 나의 가치를 확인...
  도망... 실시간 감시...

  사실, [너는펫] 같은 작품도 봤었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귀여워해서 펫으로 삼는다는 것에 대해서 증오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펫으로 삼는건 그렇다치고 돈으로 주고 사고 판다니... 어라 돈? 돈은 어디서 나오는걸까요? 현거래도 있는걸까요? [...]

★돈 버는 방법★

1. '너는 펫'에 가입하시면 $1,000을 드려요.
2. '너는 펫'에 접속하시면 하루에 세 번 $2,000을 드려요.

3.
'너는 펫'에 친구 한 명을 초대할 때마다 $1,000을 드려요.


 보통 캐쉬를 모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친구를 '너는 펫'에 초대하는 것이에요.
  아하 그렇군요. [...] 그러니까
  [ 돈이 필요해요ㅠㅠ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건가요 ] 라는 비장한 쪽지는
  펫을 위한 안타까운 애정의 손놀림이었던겁니다.
  돈이 필요했던거죠. [...]

  아이디테일 측에 하고싶은 이야기는, 오픈ID를 연계해서 뭔가 서비스를 하는건 좋지만 '왜' '무엇을 위해서'라는 지점이 빠진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동인녀/남들을 집중지원해주기 위한 서비스였다든가 주인-펫 시스템을 네트 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한 모종의 음모가 있다든가 하는게 아니라면 말이죠.
  너는펫 이라는 서비스는 해보고 싶고 그런데 사람들을 엮을 네트워크 기반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아서- 펫을 사고 판다는 개념을 집어넣은 것 같은데 '가치'와 '금액'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집어넣은 것이죠? 실제적인 컨텐츠와 연결고리가 없어서 초대만 하면 돈을 주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네요. 결과적으로 이게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서비스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처음처럼 인신매매 사이트인가 라는 다소 오해스런 장난스런 인상만 남았네요.
  그러니까, 멀쩡하신 분이 '돈이 필요해요ㅠㅠ'라면서 쪽지 공세를 펼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어요?

농담 같은 스토리

2008/07/22 17:14
  농담도 아주 오래되어야 한다. 그 농담하는 방식 혹은 그 어법을 일러 소설이라 불렀다. 그런데 굳이 이를 가리켜 인류가 발명해 낸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 부르는까닭은 새삼 무엇인가. 아니, 대체 농담이란 무엇인가. 야유, 빈정댐, 비꼬기가 이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이른바 아이러니라 부르는 어법이 그것. 어째서 이 어법을 여자들, 아이들, 그리고 혁명가들이 제일 싫어할까. 이 물음에 민첩하게 대답한 사람이 조세프 콘라드였다. 고결한 소질, 신념, 헌신, 행동 등의 덕목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어법이 농담이다.
  유독 농담이 사람들을 못살게 굴거나 성내게 한다든가 공격한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세계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인식케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가진 확신을 빼앗거나 흔들리게 하기 까닭이다.
- 김윤식, "소설을 왜 오래된 농담이라 하는가", 한국일보 2001. 2. 20 중에서

  '오래된 정원'이나 '아주 오래된 농담'에 부쳐진 글을 인용하는게 겸연쩍지만 7년 전의 기사이니 누가 알겠는가. 굵게 표시한 부분은 기사에도 짧은 부제로 요약되어 있었는데 꽤 마음에 들었다.

  글쓰기를 세계를 창조해내는 일이라 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적어도 글을 중심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붓 가는걸 다듬어 그걸 해석해내는 작업임은 분명하다. 세계는 아리송하다. 불가해한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완전해를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학에는 농담이 있어야 한다. 왜?
  당대의 전망은 당대의 닫힌 맥락 안에서 구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 안에서 고찰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전망을 획득한다. 문학 텍스트는 당대의 전망을 수립하기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리퍼런스이다. 철학과는 달리, 문학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존재 형태를 예시하는 초월성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철학이 있었던 것들과 있는 것들 안에서 상수를 추출하여 세계상을 확립한다면, 문학은 있었던 것들과 있는 것들과 있을 것들을 참조하여 세계상을 만들어낸다.
- 김정란, 「밥풀때기와 우주」,『연두색 글쓰기』, 새움, 2001 중에서
  세계를 구성해나가는 작업에 농담이 없으면 곤란하다. 그 세계는 누군가에 의해 완벽히 규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불확실성과 상상력이 함께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현실의 견고한 텍스트를 부수는 일이 필요하고, 흔들림 없다고 생각했던 개념은 산산조각 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요컨대 농담이 있으면 족하다. 잘 된 농담과 잘 되지 않은 농담이 있겠지만, 그런 가치평가를 하기 이전에 농담들은 각기 하나의 이야기로서, 문학으로서 동등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음은 인정받아야 한다.
  농담의 영역에 따로 장르가 어디 있겠나 싶지만, 과거 추리소설이나 판타지가 그랬듯 소위 순수문학의 변두리/바깥에 위치하는 장르들은 마치 문학의 일원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국의 문학권력이 문단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든가 하는 동네 얘기는 제쳐놓고서라도, 문학을 즐기는 독자 다수가 이런 편견에 함몰되어 있다. 클래식과 락음악을 함께 들으면 이해하지 못하고, 애니메이션과 독립 영화를 함께 즐기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세태라지만 분명 농담이 농담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이글루스에서 도서 밸리에 올라오는 '일빠들이 좋아하는 라이트노벨'은 책이 아니므로 제거해줄 것을 요구하는 포스트를 본 적이 있다. 문제는 이게 단순히 고상함에 치를 떠는 사람의 넋두리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농담을 던져봐야 하는 세상이 아닐까.

  그런데 다시 인용문으로 돌아가서, 아이러니의 어법을 '여자들과 아이들, 혁명가들'이 제일 싫어할지는 모르겠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현실도 야유, 빈정댐, 비꼬기라는 농담이 없어선 안 될 만큼 절실하다. 그래서 시대가 상업적 글쓰기에 잡아먹혔다는 글팔이 공장장의 징그러운 엄살과 자기변명이 들려도, 어딘가의 무명씨가 뱉어냈을 날선 풍자는 일말의 편견을 용서해주고 싶을 정도로 고소한 것이다. 다만 이런 해학이 아이들과 혁명가의 것으로 치부된다는 것만큼은 여전한 사실인 듯하다.

플래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08/07/21 00:56
  바야흐로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인지라, 좋든 싫든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는 요즘입니다. 각고의 심혈을 기울였건 기계에 찍어내듯 양산했건 작가의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토리로부터 특정한 진행 기법을 추출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독자 쪽의 욕구가 생기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플래그입니다.
  플래그에 대한 유익하지 않은 글을 써볼까합니다.

  플래그란 깃발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지만, 여기서 다루는 플래그는 소설이나 드라마, 또는 만화·애니메이션, 시뮬레이션 게임 등의 스토리에 있어서 이후의 특정한 전개·상황을 일으키는 사항을 가리키는 슬랭이다. 복선과 같은 의미이기는 하나, 플래그는 비교적 단순히 정형화된 '정해진 패턴'의 함의가 있다.
- 일본어 위키백과 '플래그(스토리)' 문서에서
  (아직 이 항목의 한국어 문서가 없길래 저의 조악한 번역을 붙여봤습니다)

  어떤 상황을 보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 짐작이 가게 하는 장치가 플래그라는 얘깁니다. 복선보다 단순하고 정형화되었단 얘기는 이런겁니다. 보편타당한 간단한 예를 들죠.
  -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에서, 애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음의 일을 기약하는 등장인물. 돌아오는 것은 주검, 흐느끼는 애인
  - 등장인물을 과소평가하는 반대 세력. 깔보는 대사를 한두개 툭 던진다. 그러나 등장인물에 의해 패배하거나 격파
  - 소망과 맹세를 말하고 중요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인물은 대개는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실종/기타 등등

  영화의 맥락에 대입한다면 플래그는 클리셰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스토리의 진행뿐 아니라 영상에서 연출의 영역에서도 플래그는 성립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클리셰 중에서도 너무 뻔한 정도의 강도에 해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무차별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 자제하도록 하고... 아마도 이후에 암시하는 진행에 따라 대표적으로 나뉘는 플래그의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망 플래그, 연애 플래그, 생존 플래그, 재회 플래그, 분기 플래그 등이 있다고 하는데 대체로 설명은 안 해도 될 것 같군요. 사망 플래그가 흔히 언급되는 종류라 부연 없이 '플래그가 섰다'고 말하면 사망 플래그가 섰다는 의미가 되는 경우도 많은 듯 합니다.
  다만 분기 플래그의 경우는 이름의 유래가 보이니 설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본래 플래그라는게 프로그램을 짤 때 특정 상황에서 선택지를 주고 원하는 쪽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분기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게 사용자가 분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게임 등에서 '플래그'라는 이름 자체로 불리면서 암시나 복선을 내포하는 의미로까지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죠.

  어휘의 탄생 지점으로 보건대 플래그 용법이 회자되기 시작한건 빨라야 90년대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인류가 이야기를 창조하기 시작한 이래 암시와 복선의 기법은 꾸준히 사랑받았고, 현대의 독자의 시점에서 볼 때 플래그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접근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전통주의적 접근
  플래그를 '상투적인 복선'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하거나 파악하려는 방식. 이것은 단지 이야기를 양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뿐 아니라, 소위 장르적 문법을 적용하면서 독자로부터 이야기 진행에 대한 공감을 얻고 기호나 성향에 따른 잠재적 소비층을 결정하려는 행위로 연결시킬 수도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건의 진행에 대한 실마리를 얻음과 동시에 작품의 성격을 규정하는 단서로서도 활용될 수 있다. 연애물에 있어서는 여성향/남성향/노멀의 구분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있을지도 모른다)

  수정주의적 접근
  특정한 문장이나 전개가 상투적인 플래그로 견고해지는 것에 대항하여, 작가의 표현 방식의 자유를 존중하고 전개에서 자유도를 높이는 방식. 진행의 의외성을 강조하거나, 상투적 플래그를 낯선/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하거나, 복선의 사용을 현격하게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 낯설게 하기
  상투적 플래그/플래그 코드를 그대로 차용하여 사용하는 대신,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문맥에서 쓰이도록 함으로써 의외성을 가미한다. 동인지 혹은 성인지에서 원작의 세계관을 빌려 쓰면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 플래그 함정
  플래그를 배치하되 이후의 전개를 쉽게 예측하지 못하게 사용하는 수법. 추리나 미스테리 장르에서 흔히 쓰인다.
  * 플래그 컴플렉스
  플래그를 사용하되 작품 내부에 액자형 구조를 끼워넣어 플래그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전통주의적 플래그 기법에 대한 지루함을 덜어주면서도 기법 본연의 효과를 살리려는 의도가 있다.
  * 절충형
  플래그의 진부함과 관계없이, 자유로이 사용하되 작품 내에서 (되도록) 2차적인 의미가 부여되도록 조정한다. 2차 창작의 영역에서 흔하게 쓰인다고 볼 수 있으며 메이저로는 '하야테처럼!'을 꼽을 수 있을지도.

  이외에도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게 좋은 편인가요? 만일 쓰시는 분이 있다면 어떤 쪽인가요?
  아마도 플래그라는게 독자 입장에선 쉽게 이야기하기 좋은 개념이고, 그만큼 패러디의 영역에 쓰이기도 편한게 아닐까 정도는 결론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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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자!)

시사가 저를 좀먹어갑니다

2008/05/01 01:50
  이 글은 지인들에게 보내는 부탁의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진행해보겠습니다.

  마치 방어를 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자기 성향을 드러내는 서두를 싫어합니다만... 그래도 굳이 밝히겠습니다. 저는 시사에 대해 평균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정치 주제에 한정하지 않고도, 대학 입학 할 때도, 학부 입학 후 전공을 정할 때도 사회과학에 대한 흥미가 주된 잣대가 될 정도로는 이 분야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때는 - 종이신문으로 보지 않더라도 - 미디어가 쏟아내는 기사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덜하지만, 지금도 주요 이슈들에 대한 얘기는 빠뜨리는 경우는 없을 정도로 봅니다. 이 얘기를 굳이 왜 하냐구요?
 
  시사 문제를 보면 숨이 막힙니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의 대상도, 수준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만) 혹 사회운동가 같은 분들이 보면 '뭐 그정도로' 라면서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일단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연일 터지는 어이 없는 뉴스들에 기가 찹니다. 어느 정도여야지, 짧은 기간 내에 100단 콤보를 먹으면 감당해내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설령 기자나 데스크의 이름으로 이슈가 소위 '떡밥'이 되더라도 참으면서 볼건 봅니다.
  그래서,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걸. 답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기사 링크라도 건네주며 좀 보라고 한다는걸. 저도 종종 그래보기도 했기에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 직전부터 치더라도 거의 반년이죠?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쳤습니다. 아, 적어도 얘기하는게 싫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기사 링크만 따와서 건네주고, '이게 뭥미'라든가 '흠좀무' 같은 단발적 멘트 한 줄 정도 붙여서 말씀 붙이시면 저는 클릭해보기도 싫습니다. 그 분이 미워서가 아니라 지쳐서요. 그리고 정말 대부분은 제가 읽은 이슈이거나, 제가 읽은 바로 그 기사입니다. 어떤 경우는 제가 종종 가는 커뮤니티와 일치해서, 제가 읽은 바로 그 게시물을 또 읽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몇달 동안 하니 과히 좋지는 않습니다.

  제안하겠습니다. 어차피 답답해서 시사에 관련된 말을 쏟아내고 싶으시면, 본인 블로그라든가 어디에 '자기 사투리로' 좀 정리해서라도 올리고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해서 쌓인 논리는 자기 담론이라도 됩니다. 링크에다 한줄 더 해서 '이뭐병' 정도 써 놓고(과도하게 축약했다면 용서하세요) 같이 비웃으며 깝시다의 뉘앙스를 풍기는 말걸기는, 서로 지칠 뿐입니다. 안그런가요? 저도 안 그런 적은 없으니 반성하겠습니다.
  뭘 그렇게 민감하냐고 말씀하신다면 ...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 민감하니까 하나하나의 이슈에 대해 너무 반응을 기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도 주변에는 정치라면 냉소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고, 답답한 마음입니다. 그런 사람들끼리라도 사정을 이해해줍시다.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 명단

2008/04/10 16:04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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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임기 동안 무얼 하는지, 잘 지켜봅시다.

서울이라는 도시

2008/04/09 03:16
  2001년쯤인가, '서울에 꼭 살아야하는 이유가 있어요?'라는 질문을 처음 들었다.
  바꾸어 생각해보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째서 넓지도 않은 나라의 인구의 1/4이 한 도시에 모여 아귀다툼하듯 살아야만 하는지. 

  물론, 보통은 '반드시'라는 질문에 긍정이라는 대답이 오기는 힘들다. 하지만 (당위성을 띤다기보다는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한국인은 능력만 된다면 서울에 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이유는 서울의 주거 환경이 너무나 좋아서가 아니다.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고 싶어서, 최소한 서울에서 살고 있으면 서울이 아닌 [지방] 주민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서울과 지방 사이에는, 나처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미처 짐작도 해보지 못했을만큼의 벽이 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양분을 반쯤 차지하고 자라난 배꼽과 같다. 흔히들 말하는 문화 시설은 말할 것도 없이- 삶을 윤택하게 해 줄 모든 요소들이 서울 안에만 뻗어 있다.

  지난해 한겨레 기사였던가, 출퇴근시간에 가장 많이 사람을 쏟아내는 지하철 역은 강남역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럴만한게 강남에는 굉장히 많은 회사들이 입주해 있고, 많은 회사원들이 출근하기 위해 같은 시간대에 수도권의 각지에서 그 동네로 몰려드니까. 그런데 여기서 잠깐, 기업들의 본사나 사무실은 왜 강남에 그리 많은걸까. 회사가 강남에 위치해서 생산성에 기여하는 부분은 대체 매출의 몇 퍼센트나 될까. 사원들이 주거지로부터 긴 시간을 오가며, 힘겨운 강남 출퇴근을 하는 만큼의 삶의 행복도 감소와 생산성 감소는 얼마나 될까. (동종산업군의 회사가 같은 동네에 모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논리는 알고 있지만, 그걸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아니면 적어도 '강남'에 대해서는.)
  불행히도 결과주의적이지만 답은 '거기가 중심이니까'뿐인 듯하다. 이 논리에 종속되는 한, 중심부에 있는 사람은 떨어져나가지 않기 위해, 주변부에 있는 사람은 중심으로 진입하기 위해 생존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이 공간을 현실의 세계에 확장한 것이 서울 공화국이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 출발선이 다른 사람,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서울 바깥에 있다. 서울이 아닌 것은, 아무리 극복하려 해도 일상의 불편함을 가져온다. 그 삶의 작은 요소요소들이 현실의 권력인 셈이다. '왜 꼭 서울에 살아야 하는데?' - '거기에 살아야 인간 대접을 받거든'. 다시 말해 승자와 패자 간의 현실 공간이다.

  지난 주 강동구를 지나가다가 국회의원 후보자의 현수막들을 보았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재건축 꼭 이뤄내겠습니다'가 현수막의 구호였다. 무려 재건축이 공약이다. 이 말의 뒷면에는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숨겨져 있다.
  점점 빽빽이 들어서고 있는 고층의 다세대 아파트 단지들은 한국만의 독특한 주거문화다.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는(유럽인이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한국의 아파트촌이 빈민들을 위한 주거공간이 아님을 이해시키는데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이제 일반 주택/맨션보다는 분명히 고급의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서울이라는, 혹은 강남이라는 매우 한정된 면적의 땅에 누구라도 거주하기 위해 그렇게 아파트는 고층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서울 공화국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강남 땅의 수요가 끝이 있을리 없다. 집을 아무리 많이 짓는다고 해도 가격은 항상 올라갈 수 밖에. 한정된 권리로부터 더 많은 재산을 약속받는다는 점에서 재건축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서울을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겠지만, 누군가 욕망의 서울을 보여달라고 하면 난 주저 없이 잠실을 보여주겠다. 이 동네는 강남과 마찬가지로 80년대에 개발되었고, 강남권으로 묶이는 서초, 강남, 송파의 한 일원(송파구)이기도 하면서 강남구에 항상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 88년 올림픽이 열렸다는게 주된 자랑으로 올림픽 개최를 통해 한 단계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이데올로기와 잘 어울리며, 강남권이 아닌 다른 서울 지역에 대한 우월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은 과거 잠실 주공아파트 대단지가 여러 단지로 나뉘어 재건축되었고, 또 재건축이 진행 중이다. 잠실 롯데 백화점은 소비의 상징이고, 롯데월드는 이 동네에 적절히 마련된 판타지의 세계다. 제 2 롯데월드를 지으려하는 롯데 신격호 회장의 야망이 공사장으로 아직 남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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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성행위 동영상에 대한 반응

2008/04/06 01:39
  뉴스는 새로운 소식뿐 아니라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전해주기도 한다. 같은 소재를 다뤘다 하더라도 어느 기사에 반응하느냐는 꽤 다른데,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건의 어떤 부분에 주목하고 있는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가 주요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5일 미디어를 탔던 지하철 5호선 성행위 동영상에 대한 반응이 그러한데, 처음에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렸던건 '성행위'와 '지하철' 그리고 '동영상'이었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공개되어서는 곤란한 성행위라는 행위가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이 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어졌다는 일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를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는 것이 주목의 대상이었다. 이 관심은 공공장소와 외부의 시선에 관련한 성담론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서 사건의 주체들이 이성이 아닌 남성 2명이었다는 점이 알려졌다.

  관심사는 이 남성들에게 쏠렸으며, 호기심의 차원이 아닌 불쾌함과 역겨움의 배타적인 차원으로 전이되었다. 성행위를 노출시켰다는 것과 그 행위자가 남성 동성간이었다는 점, 이들이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주목되었다. 키워드는 성행위로부터 동성 성행위로 변화되었다. 이 단계에서 생산된 기사 제목들은 지하철 성행위 외에 '동성'이라는 단어를 집어넣고 있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최초의 사건으로부터 발견했던 '공공장소인 지하철에서 당당하게 외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행위를 하던 어떤 (특수한) 커플'보다는 '동성애'가 사건을 요약하는 핵심으로 작용한다. 이 단계에 이른 기사 제목들은 '지하철 성행위'라는 제목보다는 '지하철 동성애 파문'과 같은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특수한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동성애라는 경향을 직접 끌어들이면서 동성애 집단이라는 무리를 '정상적인' 사회와 구분짓고, 사회에서 벌어진 파문의 일조각을 동성애 집단 전체에게 뒤집어씌우는 시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특정 집단을 겨냥하는 방식은 이슈를 만들어내면서도 직접적인 타격은 피할 수 있는 손 쉬운 방법이다.

  이 글은 결코 지하철에서 성행위를 했던 그 커플을 비호하는 글은 아니라고, 오독이 난무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한 치의 피곤함을 덜기 위해 마지막 줄을 바친다.

여성 운동선수의 인권에 대해

2008/02/05 20:17
"여성 선수들을 장악하기 위해선 성관계를 통해 자기 여자를 만들어야 하고 폭력으로 길을 들여야 한다."
한 스포츠 유명 지도자가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다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다룬 2월 5일자 기사를 위의 발언을 인용하며 시작하고 있다. KBS 시사기획 '쌈'의 취재로 11일에 방영될 방송분을 미리 소개한 것인데, 그 동안 암묵적으로 소문만 돌 뿐 묻혀져 있던 문제를 조명한 것이라 의미가 크다.

  기사의 내용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 동안 충분히 의혹이 제기되었던 부분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일을 마치 '운동 선수/지도자들이 무식해서' 벌어진 것처럼 받아들이는 반응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건 운동을 삶의 일부로 택한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얘기다. (게다가 대다수의 운동 선수들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식'하지도 않다)

  질문이 제대로 되어야 답도 제대로 나온다는 걸 감안할 때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성폭력이 개인의 지적 능력과 크게 관계 없이 행해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무식한 운동선수/지도자'를 욕하는 사람들은 서울대 출신에 사법고시를 패스했던(유/무식의 지표로 삼는데 어폐가 있지만 질문 자체가 어긋난 것이므로 양해를 구한다) 국회의원 최연희씨가 얼마나 무식해서 성폭력을 저질렀을지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소위 식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성폭력 사례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개인에 한정된 요소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러싼 권력 관계를 비롯한 환경적 요인, 즉 [관계]가 핵심적으로 봐야 할 요소다.

  여성 운동 선수들은 왜 그런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까?
  여성은 물론 남성을 포함해서, 운동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다. 교실에서 매일 수업을 함께 듣는 운동부원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학교 수업을 포기한다. 자유롭게 여유 시간을 가질 권리도 포기한다. 학기 중은 물론 방학 기간에도 시도때도 없이 합숙 생활이 이어진다. 모든 생활이 운동만을 향해 맞춰져 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느냐고? 인프라며 재정적 지원, 스포츠 리그 활성화 등 여러 부분에서 여건이 좋지 않은 대부분의 운동 종목에서, 훌륭한 선수로 자랄 수 있을지의 여부는 그들이 속한 팀 성적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뛰어난 리그를 보유한 야구나 축구라고 다를 것도 없다.
  '즐기는 스포츠'가 없는 대신에 '국위선양'을 위한 스포츠는 존재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가장 확실하게 우수한 선수들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성적 지상주의/엘리트 체육 아래에서, 선수들은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운동에 인생을 올인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여성의 경우는 성폭력의 문제가 덧붙여지는 것이다.
  운동선수로의 미래가 지도자에게 달려 있는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 관계로부터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성적 권력 관계를 놓고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가 짜여 있는 것이다.

  기사에서 프로그램 제작진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남자 지도자의 여자 선수 숙소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여학생들과 밀폐된 공간에서 대화를 하더라도 처벌 받을 수 있다”
“당장 우리 문화에서 이러한 제도를 가지고 오는 것은 무리겠지만 무리한 합숙과 구타를 엄격히 제한하는 등 현실적인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가 어떻길래 선수 인권 보호에 당연한 처벌 제도를 도입하기 어려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궁극적인 해결은 적어도 학원 체육만큼은 성적 지상주의로부터 분리시켜내는 작업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선수와 지도자의 관계가 일방적인만큼 지도 현장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간접적인 인권 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
  기회가 있으면 추후 포스팅으로 지적하겠지만, 이번 보도를 계기로 체육계를 지탱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엘리트 체육이 실상 한국 체육계를 좀먹고 있다는 점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