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

2008/07/28 01:59
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 - 6점
혼다 토오루 지음/창우BOOKS
  '그림 동화는 잔혹하다'라는 말이 바로 연상될 만큼 그림 동화의 이미지가 강해져 버린 오늘날이지만, 여러분!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림 동화는 원래부터가 '동화'입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을 막론하고 사랑받는 존재물입니다.
  결국, 그림 동화는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랑 이야기의 원류인 것입니다.
- 혼다 토오루, 「실은 모에한 그림동화」, 2006
머릿글에서

  지인인 S모님의 협찬을 받아 읽게 된 책. 눈길을 끄는 저자 이름에다, '튀고 별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띠지까지. 국내에는 '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세 가지 '혼란 방법'- 즉 문헌학적 텍스트 비판과 정신분석학, 유물론을 통해 동화를 하나의 텍스트로 이해했던 「누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웠는가?」(이링 페쳐)로부터, 동화를 재구축하는 작업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재구성된 많은 숫자의 동화만큼, 다양한 시점이 있다. 전승을 통해 만들어져 내려온 동화가 텍스트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제 재구성된 동화들은 어떤 관점에서 왜 불러내어졌는가를 따져야 할 시점이다.
  그러므로 「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의 '뒤집었다'는 원제가 「실은 모에한 그림동화」라는 것은 극히 명료한 답을 나타내주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뒤집었다기 보다도, 그림동화의 이야기들을 빌려 쓴 모에동화다. 거기다가, 비평식의 글을 덧붙이고 싶어도 저자가 각 작품들마다 스스로의 해설을 붙여놨다. 이건 반칙이다(웃음).
  때문에 이것저것 적어보려던 기백도 모든 것을 까발린 저자의 해설 앞에 움츠러들 수 밖에 없는데... 별 수 없다, 다른 방식으로 써야지.

  이러한 무자각하고 천진난만한 '선악의 카테고리'는 동화나 만화의 아동용 이야기 장치에 의해서, 어린 아이들의 가슴 속에 새겨져 버린다.
  물론,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교육하는 행위 자체는 절대적으로 빠뜨려선 안 된다. (...)
  그런데, 많은 동화나 아동용 이야기에서는, '선'과 '악'을 각각 예를 들어 '왕자님'과 '늑대'라는 캐릭터에 투영시켜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실은, 아이들을 위해서 동화를 만드는 어른 자신이 "자신은 선인이고, 다른 누군가는 악인이다."라는 거대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 이것은 '억압'과 '투영'이라는 심리 규제에 의해서 생겨나는 오류이다. (...) 그림 동화를 재해석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러한 "투영에 의한 악이 외부에 있다는 문제와 인간의 계층화이다."
- 혼다 토오루, 앞의 책, 후기에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할 것까지도 없이, 굳이 이 책에서 재구성의 메세지를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위의 작가 후기 부분으로 대체로 충분하다. 저자는 동화에 의해 부여된 고정적인 선악의 투영에 혼란을 주고 싶었으며, 선인과 악인의 이분적인 잣대와 계급화를 학습시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다인 것 같다. 이 책은 '모에'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에 해설까지 넣는 반칙을 구사하고 있기에 감추어지지만, 작품만을 읽었을 때 이건 위트가 보일 뿐인 모에 스토리다. 해설에 서술하고 있는 내용 중에 자본주의나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 등이 들어가 있는 척 하지만 그걸 해설 없이 읽어내길 바란다면 저자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냉정히 말하면 작품에서 읽어내기 어렵기에 굳이 해설로 첨언을 했다고 할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에 스토리면 어떤가. 기대하지 않았다면 여러 대목에서 피식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는 있다. 다만 해설이 없다면 재구성이 아니라 패러디에 불과하지 않을까라고 평가해야 할 정도라, 이 책을 다룬 몇 포스트들에서 '오타쿠 옹호용'이란 딱지가 붙은 것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오타쿠'라는 딱지를 아무렇게나 붙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표현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이 책은 그림동화의 몇 스토리들에 '모에'스러운 각색을 시도한 작품집이다. 그런 다음의 결론이 '여동생은 모에하지 않은가!' '옛 얘기에도 츤데레(저자식 표현으로는 츤데레)가 있지 않은가!' '성역할이 바뀌어도 역시 모에란건 좋은게 아닌가!'라는건데. 이게 얼마만큼의 결론이 되겠는가? 뭐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그 정도일 뿐이다.
 
  그래도 '동화 재구성 읽기'라는 맥락 속에 이 책을 집어넣을 때, 저자가 '모에'에만 너무 주목한 나머지 스스로 사랑 이야기를 쓴다고 해놓고 그 본질에 대해 별 탐구나 언급 없이 모에를 적용한 부작용이,
  "예쁘면 다 통한다."라고 하는 진리는 역시 세계 각국, 시대를 막론하고 다 통한다 생각되어 집니다.
- 앞의 책, p. 42
  결국 여자를 사랑의 대상으로써 우러러 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 먹이로써 취급하는 타입의 남자도 존재합니다. (...) 유감스럽게도, 많은 여자들은 이러한 남자를 좋아합니다.
- 앞의 책, p. 60
  이처럼, 내 나름대로 그럴 듯한 억지 이론들을 늘여 좋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여동생은 강하다, 여동생은 예쁘다!!" 동생을 사랑하는게 뭐가 나빠!!
- 앞의 책, p. 236
  처럼 나타나버린다. 굳이 여기다 페미니즘을 들이대서 글을 길게 만들고 싶진 않지만. 작가가 동화를 재구성해봤다는 계기로 '선악의 투영'에 대한 거부를 나타내고 있는 걸 들어보면, 누군가 [왜 당신은 동화에 모에를 투영했는가? 모에가 아닌 사랑 이야기는 없지 않나?] 라고 물었을 때 작가는 불행히도 "내가 좋아서 그랬다, 모에, 좋지 않은가? 여동생은 역시 모에하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은 모에한 그림동화」라는 제목을 「원작을 뒤집어 생각해본 그림동화」라 낸 건 솔직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모에'라는 말을 번역하기 곤란할지 모르지만, 모에가 모에지 뭐겠는가.

덧 | 문장의 번역 완성도는, 안 좋습니다. [...] 인용문에도 그대로 보이기에 한마디 해둡니다.

기후와 작물, 사회 2

2008/07/23 00:24
  이 새로운 유형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 나타날 것인가? 한 가지 입장은 에너지 기업들이 내세우는 견해인데 지구 온난화에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점진적인 기후 변화는 보다 자비로운 기온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해수면이 약간 올라가고 얼마간의 극단적인 기후 사건이 일어나겠지만 몇 세기 안에 지구는 보다 단일화되고 보다 따듯한 기후를 누리게 되어 얼음 두께가 얇아지고 겨울이 온화해지며 보다 예측 가능한 기후로 바뀌어 그 옛날 공룡 시대의 기후를 닮아갈 것이며 그래서 인간은 고대의 기후 변화에도 적응했듯이 별 노력 없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 브라이언 페이건,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2000, pp. 341~342

  그러나 역사의 기록은 이것이 환상일 뿐임을 보여준다. 기후 변화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돌연한 것이며 10년 또는 년 단위 이내의 기간 중에 급격하게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것이다. 소빙하기는 그 급격한 기후 변화로 유명하다. 수십 년 동안 안정적이던 기후가 갑작스럽게 추운 날씨로 변해버렸다. 지난 17세기 말이나 1740~1741년이 그 예다. 기후 변화의 돌연성이라는 패턴은 1만 5천 년 이전의 빙하시대까지, 아니 어쩌면 지질시대의 시초까지로 거슬러올라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역사를 안다면 갑작스런 기후 변화가 일률적으로 온난화되는 추세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식의 경솔한 주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
  소빙하기는 우리로 하여금 기후 변화란 불가피한 것, 예측 불가능한 것 그리고 때때로 지독하게 심술궂은 것임을 깨닫게 한다. 미래의 기후 변화 역시 그 규모가 국지적이든 범지구적이든 난폭할 것이다.
- 브라이언 페이건, 앞의 책, p. 342

기후와 작물, 사회

2008/07/22 23:58
  이런 기후 조건은 북유럽 거의 전체가 비슷했지만 아일랜드는 습도가 높은 것이 감자에 특히 적합했다. (...) 요리하기도 쉽고 저장도 쉬워서 감자는 아일랜드 빈곤층에게는 안성맞춤인 식품이었다. 이래서 감자는 자연스럽게 효과적인 구황식품으로 등장했다. 감자와 곡물의 조합은 곡물 농사가 흉작이 되더라도 안전판이 되었다. 감자와 곡물 간의 균형이 유지되는 한 아일랜드는 굶주림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한 셈이었다.
- 브라이언 페이건,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2000, p. 297

  아일랜드의 감자 재배는 그 뒤 반세기 동안 20배로 늘어났다. 물론 '학살의 해(Blaidhain an air)'라고 불리게 된 1740~1741년은 예외였다. 그 해에 유례 없는 혹한이 몰려와 곡물과 감자 그리고 가축, 심지어는 바닷새들까지 얼어죽었다. (...) 30 내지 40만 명이 이질, 굶주림, 티푸스로 인해 죽었다. 결국 아일랜드인의 10퍼센트 정도가 1740~1741년 당시의 기근과 그에 따른 질병으로 죽은 것이다. 이 때의 기근은 감자도 귀리도 아일랜드 농업의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비가 잦은 기후에서는 감자의 저장 기간이 최장 8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 브라이언 페이건, 앞의 책, pp. 298~299

  날씨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성을 망각한 채 아일랜드는 단품종 경작이라는 위험천만한 농업으로 옮아갔다. (...) 감자의 공급에 차질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 영국은 본토 북동부의 리버풀과 맨체스터 지방의 급격한 산업화로 늘어난 인구를 먹이기 위해 아일랜드의 감자를 수입했다.
- 브라이언 페이건, 앞의 책, p. 300

  감자는 식량 부족에 대한 충분한 보험이 아니었다. '여름이 없던 해'인 1816년에 6만 5천명이 굶주림과 그에 연관된 병으로 죽었다. 그들이 죽은 부분적인 원인은 영국 당국자가 과거처럼 곡물 수출을 금지하지 않은 데 있다. 총무대신 로버트 필은 국가가 기근 구제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나서면 개인 자선가들이 구휼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므로 국가가 적극성을 띠지 않겠다고 억지 핑계를 댔다. 1817년 6월 그는, "생활 수준이 높은 자들은 가족 식탁에 감자를 올리지 말 것이며 말에게 먹이는 귀리의 양을 줄이라"는 얼빠진 지침을 내렸다.
- 브라이언 페이건, 앞의 책, p. 303

  로버트 필은 아일랜드 통치에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아일랜드의 문제들은 사회적 후진성에 기인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미국에서 값싸게 들여오는 옥수수로 아일랜드의 식생활에서 감자를 영원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시골의 빈민들을 부농의 땅에서 일하고 품삯을 받는 임금노동자로 만들려 했다. 그는, 자유무역이 이루어지고 고도의 과학적 농업에 점점 더 많은 투자를 하여 사회가 재조직되기만 하면 아일랜드의 농업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 피터 그레이, "아일랜드 대기근", 1995, p. 39

  1845년 아일랜드 전체의 감자 손실률은 약 40퍼센트, 그러니 기근의 위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 위원회는 원인 규명에는 실패했지만 필에게 미국으로부터 10만 파운드 상당의 옥수수를 즉시 수입하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필은 굶어 죽어가는 감자 농민을 구제하기 위한 식량으로서가 아니라 정부가 곡물 시장에 관여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곡물 가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조치를 취했다. (...)
  1846년 4월, 하원은 농부들이 씨감자를 먹어치우고 있음을 알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 8월 초에 들어서자 동고병이 작년보다 딱 두 달 앞서서 다시 찾아왔다. (...)
  1846년은 흉작으로 인해 전 유럽이 식량 부족에 빠진 해였다. 그래서 각국은 지중해와 북아메리카로부터 수입하는 식량 화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높은 값을 치르고 대부분의 식량을 차지했다. 영국은 여기서 밀려나고 따라서 아일랜드의 기아 구제에 차질이 생겼다. (...) 그러면서 정부는 굶주리는 그 지방에서 곡식이 반출되는 것을 금지하지도 않았다. (...) 10월이 되자 날씨가 추워졌다. 11월에는 타이론 지방에 15센티미터의 눈이 니렸다. (...) 그해 11월, 28만 5천 명이 보잘 것 없는 품삯을 받고 구제기관이 실시하는 근로사업에 나갔다. 많은 수가 일하다 죽었다. (...)
  빛나는 여름과 병 없는 수확에도 불구하고 기근은 1847년에도 계속되었다. (...) 1848년 (...) 7월 들어 냉랭해지면서 비가 자주 내렸다. 그러자 어느 날 하룻밤 사이에 동고병이 발생했다. 8월이 되자 비가 더 많이 내려 밀과 귀리 농사를 망치는 새로운 재앙이 추가되었다. 1848년의 감자 흉작은 처참했던 1846년에 필적했다. (...)
- 브라이언 페이건, 앞의 책, pp. 307~316

  "거대한 이민의 물결이 끊임없이 서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 이민자들은 아일랜드의 농민과 날품팔이 인부들로, 신대륙에서 운명을 개척하고자 구대륙을 떠난 다섯 사람 중 최소한 네 명이 아일랜드계로 추산된다. 감자 기근과 콜레레가 만연하여 비참한 나날이 이어졌고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그 숫자가 너무나 엄청나 아일랜드 인구의 점진적 감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정도이며, 그런 예상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850년 7월 6일
- 피터 그레이, 앞의 책

  이 대기근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 극도로 예측 불능했던 기후와 단일 작물에 지나치게 의존한 점과 정부 차원의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유럽의 한 귀퉁이 고립된 섬에서 적어도 1백만이 넘는 인구가 죽었다. (...)
  아일랜드의 인구는 나머지 19세기 기간 동안 줄곧 줄어들었다. 이민은 1854년에 최고조에 달했다. 1860년대에도 매년 9만 명 꼴로 이민을 떠났다. 이것은 1870년대 와서 이탈리아 이민이 급증하기까지 유럽 어느 나라보다 높은 이민자 수였다. 1900년에 이르자 아일랜드의 인구는 대기근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유럽 여러 나라 중 아일랜드에만 있었던 독특한 현상이다. 아일랜드의 인구 감소 추세는 1960년대에 와서야 겨우 반전되었다.  (...)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유럽의 마지막 기근이 아니었다. (...) 그러나 수치스럽기로는 아일랜드의 기근을 따를 기근이 없다.
- 브라이언 페이건, 앞의 책, pp. 315~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