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9/25 연금 고갈에 대한 간단하고 기본적인 이해 (2) - 서진휘
  2. 2008/09/18 20080918 (9) - 서진휘
  3. 2008/09/11 판치라 : 남성적 욕망에 올라타기 (7) - 서진휘
  4. 2008/09/04 피 주스를 향한 여정 (2) - 서진휘
  5. 2008/09/04 알라딘 TTB2 추천도서에 짧은 코멘트 - 서진휘
  6. 2008/09/04 근황이라고 할까 - 서진휘
  흔히 연금 상태가 안 좋다든가 고갈되어 간다는 얘기가 나오면 누구든 '어떻게 운영을 했길래 그 지경'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언론에서 이를 효과적인 대정부 공세의 빌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정권이 어느쪽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공무원 연금이 최근에 개혁되었다고 하는데 보험료는 인상되고 지급액은 줄어든다고 한다. 이는 시간문제일 뿐 에상되던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러나 사실, 모든 연금은 고갈을 향해 달려가게 되어있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딜레마라고 할까. 연금 제도를 수십년 전부터 운영해봤던 선진국들도 차례차례 연금이 고갈되어갔고 옆나라 일본도 착실히 연금이 고갈되어가고 있다.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나라도 물론 하나하나 연금이 고갈되어 갈 예정이다. 그냥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뭐 연금 고갈에 대한 설명 방식이라고 보면 되겠다.

  1. 우선 연금은 공적 부조의 한 형태이다. 다시 말해, 연금 가입자가 은퇴 이후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을 목표로 한다.
  때문에 연금지급액은 가입자의 납입액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있어서 (여기서 말하는 인플레이션은 연금을 생각하고 있는만큼 수십년 단위로 보도록 하자.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매우 작거나 마이너스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장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상승한다고 할 수 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주1) 바꾸어 말하면, 연금 가입자가 납부한 연금액은 물가가 상승함에 따라 계속 가치 절하된다.
  인플레이션에 관한 고전적인 유머가 있다. 1억이면 집을 사던 시대에, 평생 죽어라 일만 열심히 하며 돈이 모이는대로 기쁨에 부들부들 떨면서 금고에 돈을 넣던 사람이 있었다. 대충 50년 뒤 드디어 원하던 1억원이 다 모였고 이제는 다시 기쁨에 눈물콧물 흘리면서 새 집에 들어갈 새 TV를 마련하자고 결심한다. 기분 좋게 구매하려는 순간 점원이 말한다. "5천만원입니다, 손님" ( - 극단적인 에라는건 눈감아주자...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0.001%만 발생했다 치더라도 국가 전체적으론 손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자)
  국가는 연금 지급 대상자가 이 불쌍한 사람과 같은 처지에 빠지지 않도록, 최소한 연금지급액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손실 보전을 할 필요가 있다. 연금은 기본적으로 들어온 것에 비해 많이 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2. 그리고 연금 가입자의 인구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적 부조를 제도적으로 정착화시키는 (연금 강제 가입을 실현할 정도의) 단게의 국가라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산업화가 완전히 완료되고, 소산소사의 도시형 인구 구조로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피라미드가 역전되는 지점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태어나기는 조금 태어나고 평균 수명은 연장돼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연금은 한 세대만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문제가 있다. 간단히 생각해 25~65세 사이의 가입자가 65세 이후의 연금지급대상자들을 떠받치는 구조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행하는 동안 출산률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으며, 평균 수명은 연장되고,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늘어난다. 인구 피라미드의 아랫 부분은 점점 줄어들고, 윗부분은 점점 팽창한다. 젊은 세대의 인구는 줄어드는데 떠받쳐야 할 인구는 점점 늘어나므로, 그에 따른 압력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은 압축근대를 자랑하는만큼 저출산률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이며 노령화 속도에 있어서도 세계 제일이다. 가입자가 받게 되는 압력은 엄청나게 클 수 밖에 없다.
  연금은 지급대상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계속 지급하는 것이 국가의 약속이다. 굳이 언급하는게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만큼 사셨으니 어서 빨리 돌아가시라고 할게 아닌 다음에야, 납입료가 점점 인상되고 지급액이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의 수순이다.

  3. '그렇다고 해도 좀 더 잘 운영하면' 모든 것을 보전하고 수익을 낼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금에는 한게가 있다. 사적 보험이 아니라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부조의 형태이기 때문에, 연금의 운용에는 전통적으로 (미국에서도) 신중한 운용이 강조되어 왔다. 다시 말해 연금의 운용은 상당히 안정지향적이며, 무리하게 수익성을 추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연금 운용에서 일정 정도의 수익성을 추구하는 방향이 집행되었던건 케네디 정부에 이르러서야 시도되었던 일이다.

  19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출은 끊임없이 증가해왔다. 최소한의 작은 정부에서 점차 개인의 영역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고갈되어버릴 연금 따위 싹 없애버리면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젠 그럴 수도 없다. 국가의 공적 부조를 통해, 개인의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붏확실성(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있지만 가지고 가야만 하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연금 개혁이라는 것은 그래도 망하지는 않도록 연금을 조정해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금 고갈에 대한 간단한 아이디어이기 떄문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가뿐하게 쓰지 않기로 하겠다. : >

주1 )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 지칭하므로 어폐는 있는 문장이다.
2008/09/25 11:41 2008/09/25 11:41

20080918

1. 밤샘은 역시 위험합니다. 이틀 정도는 헤매게 되네요... ...하아

2. 어쩌다보니 매주 금요일에만 포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차 알맹이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3. 철학은 본래 생각과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학문일진대 참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이미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물론 근대철학 쪽은 글만 봐도 질리게 되긴 하지만...
  그다지 별 상관없지만 떠오른건, 기업 철학이라고 하는건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런 물건들을 만드느냐/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느냐'에 대한 대답이 아닐까요. 우리나라 기업들은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는지 아직까진 빤하지만 경영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마치 다른 회사를 보는 것 같죠.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일한단 말이야?' 라든가.

4. 그래 졸업하기 전엔 들어야지 라면서 근현대사 수업을 듣고 있는데... 반쯤 후회중입니다.
  강의가 실망스러워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힘들어요. 알다시피 이 시기는 결코 유쾌한 이야기가 아닌데다 온갖 .... (에이, 설명하기 귀찮으니) 낭떠러지 폭포에서 바위에 매달려 버티는 느낌이예요. 혼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입니다. 거기다 (뭐, 과제니까) 글을 써내야 하니 참 괴로워요.

5. S모님의 Z가 참 탑납니다. 무게만 가벼웠더라도(이 시대 기준으론 지금도 가볍지만요)...
  5년쯤 후엔 그 스펙으로도 더 가벼운 아이가 나와주겠....죠?

덧 | 매주 목요일인것을 금요일이라고 착각해서 썼네요. 생활패턴과 착각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2008/09/18 11:44 2008/09/18 11:44
  일상적 판치라
  새삼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라거나 (에전에도 안 그랬던 것 같지도 않다) '어머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어조라기보다는, 담담히 일상적 판치라라는 현상을 기술해보고 싶다. 그렇다, 요즘이야말로 일상적 판치라의 시대가 아닐까? 요즘은 도처에서 판치라를 볼 수 있다. 표지에 낚여 펼쳐 든 만화책에서도, 정체불명의 스토리를 확인하려 보기 시작한 애니에서도, 개발 중이라고 프로모션을 뿌리는 온라인 게임 스크린샷에서도, 어디에든 판치라가 자연스럽다는 듯이 존재할 것이다. 특정한 미디어 한정이긴 하지만. (설마 하여 덧붙이건대 캐릭터가 아닌 '현실'의 인물이 속옷을 드러낸다고 해서 판치라라고 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인터넷 공간으로 확장하면 미디어 한정이라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본 일러스트에 판치라 소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다든지. 그러고보면 이건 예전에는 흔하게 보기는 힘들었던 당황스러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남성적 욕망
  어떤 면이 당황스러운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보자. 판치라의 대상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다. 코스프레라도 했거나 어지간히 하드코어한 장르가 아닌 다음에야 남성의 판치라는 생각하기 힘들다. (혹시라도 '남성의 판치라'를 다룬 작품이 있다면 부디 소개해주길 바란다. 레어하니까 꼭 봐야한다. [..] )
  다시 말해 판치라를 욕망하는 대상은 남성이다. 여기서 남성은 생물학적 남성이라기보다는 특정한 남성적 시선을 의미한다. '보일듯 말듯'의 한계점애 가까운 지점 정도가 판치라라고 생각한다.
 
  판치라는 '나쁜가'? 잘 모르겠다. 다만 판치라가 남성적 욕망의 현상이라는게 주지의 사실이고,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두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품'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도덕률을 강제할 권리는 없다. 다만 여성 캐릭터 대상의 이 장르를 불편해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동승하기
  판치라가 페티시즘의 하위 개념이든 아니든 어떻든간에,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은밀한 '엿보기' 심리를 전제로 깔고 있다. 판치라는 우연히 그려진 일러스트 하나, 우연히 만들어진 캐릭터 하나가 아니다. 남성적 욕망의 시선이 겹쳐지고 겹쳐져서 특정한 상품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진 하나의 '장르'다. 막말로 하면 일단 주목받고 웬만큼 나가니까 일단 벗겨본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즉슨 판치라가 결합된 어떤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러한 욕망의 시선에 나 자신 하나를 던져 욕망의 일부로 만든다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같은 배에 올라 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판치라가 나오는 순간에 이 시선에 자신을 포함시켜도 되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원작과는 아무 관계 없이, 어떤 캐릭터가 다른 이들에 의해 어딘가의 공간에서 판치라화 되는 것은 삽시간의 일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요즘은 이런 단계에서 모든 부산물들을 함께 즐길 것인가/말 것인가에 대해 조금은 곤혹스러워지는 것 같다. '남자니까 어쩔 수 없어'라는 논리를 자꾸 보게 되면 더욱 그렇다.

(여전히 결론은 없는 글)
2008/09/11 12:16 2008/09/11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