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마시 1권을 보았습니다

2008/03/20 00:23
카시마시 1 - 6점
아카호리 사토루 지음/학산문화사(만화)
  [ 이하의 내용은 스포일러/네타바레/미리니름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

  지난 주 서울 모처의 서점에 놀러갔다가 S모님의 권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걸 사시는거예요!"
  제 손에는 카시마시 코믹스 1권이 들려있었습니다.
  '답례로 읽고 나면 포스팅을 하도록 할게요'라고 했으므로... 좀 늦었지만,

  써볼까 합니다.

  카시마시는 타겟을 명확히 설정한(노리고 들어온) 백합물입니다. 주인공인 하즈무는 소년이었지만 외계인과의 딥 키스로 소녀가 되었다... 라는 전개입니다만 남성일 때의 스토리를 등장 유무에 관계없이 계산해봐도 20페이지 밖에 안 됩니다.
  즉 외형상으로는 두 명의 친구 야스나, 토마리와 함께 세 명의 소녀가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는 girl meets girl이라는 부제에서도 드러납니다)

  캐릭터의 성별이 바뀐 작품을 '바뀌었다'라는 점에서 주목한다면 성 변환(성전환이라 쓰지 않음을 유의)이 단순한 설정에 불과한지 혹은 작품의 주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볼 수 있겠지요. 그로부터 이야기의 전개에 성 변환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건져낼 수 있을겁니다.
 
  우주선과의 사고가 하즈무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시키고 모든 전개의 시발점으로 작용하는 극적 장치인 것은 분명합니다. 작가가 여자를 그리는게 좋아서라든가 남자 주인공에게 여자를 한 명 더 붙여 할렘을 완성시키려는 식의 의도는 아닌, 설정상의 중요한 도구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 변환에는 커다란 개연성이 보이지 않고, 주변인은 물론 하즈무 본인도 성 변환에 대한 정체성의 괴리감을 그다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소 놀랍긴 하지만 그저 주어진 운명과도 같고, 받아들이고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쪽이지요. 주목받는 것은 단지 인물들 사이의 관계뿐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처음부터 '여성'인 하즈무를 상정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시마시를 트랜스물로 분류하는 것은 다소 위화감이 있습니다. 성이 바뀌었다는 사실에 대한 고민이나 인물의 유형 변화도 없다시피한 작품에 말이죠. 개인의 자각이나 능동적인 행위로서의 성전환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갑자기 주어진, 수동적인 성 변환이 어울리는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 변환은 작품의 장르를 일변하지 않으며(처음부터 백합이므로) 취향에 국한한 코드를 부여할 뿐입니다.

  이 작품을 남성향 백합 판타지로 규정하면, 카시마시는 보기 거북하지 않은 설정 필터를 하나 추가한 셈입니다. 가령 하즈무를 한 때 남성이었던 인물로 계속 인식하고 있으면 여고생 간의 연애 감정이 불편하지 않게 비칠 수도 있습니다. 백합 코드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면죄부가 될 수 있겠지요. 같은 이유로 남자인 친구 아스타는 중간중간 등장하여 하즈무의 과거를 일깨우지만 곧바로 무시되어 버립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하즈무의 성 변환이 작품의 특이 요소이며 주된 이야깃거리지만, 여성인 하즈무에게는 오히려 남성이었을 때의 자신/자신의 기억이 충격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까의 말을 빌리자면 외부의 충격이라 할까요. 카시마시 1권은 남성을 잊으려 하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구성할까요 ─ 여성이고자 했던 하즈무는 우주선 충돌 전에 야스나에게 고백한 일이 풀리지 않자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소원을 중얼거리는 도중 사고가 발생하고, 성 변환이 이루어진 뒤 처음 맞이하는 얼굴샷에서 하즈무는 미소를 띠고 있지요. 소망이 이루어진 겁니다. 여자아이의 옷을 입고, 여자아이의 행동거지를 하고, 여자아이의 속옷을 마련합니다.
  다만 아직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남성으로서의 자의식.
 
  우주선의 충돌은 남성 하즈무라는 과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하즈무가 '이제는 여자니까'라고 미소지으며 여자아이를 학습해나가는 건 여자아이가 될 수 없었던 남성이었다는 과거에 대한 반추. 야스나가 하즈무에게 고백해오자 처음에 '이제는 여자니까'라며 달려나갔던건 '과거엔 남자였으니까'라는 인식. 여고생의 모습이지만, 자신을 칭하는 僕(ぼく)라는 대명사는 여전히 남성어입니다. (이것 또한 남성향 판타지로서 남성 독자가 하즈무에 자신을 대입하며 읽기에 편리한 설정을 만들기도 합니다만)

  하즈무는 같은 여성에게 보살핌을 받고(토마리), 남성이 배제된 시각으로부터 존재를 인식당하면서(야스나) 점차 여성이 되어갑니다. 권말의 야스나의 키스는 남성이었던 과거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성을 잊으면서 비로소 백합 삼각관계가 완성되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 흥미있는 설정이긴 하지만, 좋다고 평가할 정도의 작품은 아니네요. 개그나 서비스컷들이 조금 즐겁지 아니한 것도 아니지만 [...] 어중간한 장치나 구도, 남성성을 간직한 채 의문으로 꺼내지도 않으면서 곧바로 삼각관계로 뛰어넘어가버리는 설정은 저를 미묘하게 불편하게 만듭니다.

  추가로, 장 푸우의 オネニーサマ가 오랍언니라고 제법 근사하게 번역되었다가 정식 번역판에는 언빠님이 된 것은 아쉽군요. 어차피 두 단어의 합성어라고 보면, 시간순으로 보았을 때도 남성->여성이고 현재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언니 쪽이 ~빠님인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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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미와다스 2008/03/20 15:44

    안읽어봐서 뭐라고 잘은 모르겠네요
    주인공이 본래 여자이길 바랬던건가요?
    그 외에 주변의 분들께서는 갑작스레 여자가 된 주인공에게 뭐라고 하진 않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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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진휘 2008/03/20 19:01

      캐릭터 스스로가 원했다기보다- 여자였으면 좋았음직하게 묘사가 되긴 하죠.
      다른 캐릭터들도 '하즈무 이제 여자가 되었구나'라면서 거의 바로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바보 인물군(부모님, 남자였던 친구)과 가르쳐주는 인물군(여성 친구들)이 있지요.

  2. 미와다스 2008/03/21 19:17

    그정도면 그냥 본래 여자였다. 라고 생각하는편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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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진휘 2008/03/21 22:19

      예... 그치만 일단 설정은 남자였다라는 것이긴 하니 [점점점]
      노린거죠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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